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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정율성 두 거장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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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방송 기자(chshs1000@naver.com) 작성일18-05-30 10:24 조회8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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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출신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과 광주 출신 작곡가로 중국 3대 혁명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는 정율성을 나란히 재조명하는 통영-광주 교류 음악회가 6월 16일(토) 통영국제음악당 및 7월 13일(금) 광주유스퀘어문화관에서 열린다.


1917년생 윤이상과 1914년생 정율성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공통점이 있는 작곡가다. 윤이상은 194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했고, 석방 후에도 경찰을 피해 항일활동을 도모하다 결핵으로 투병 중 해방을 맞이했다. 정율성은 중국에서 조선혁명간부학교에서 유학했으며 이때 의열단에 가입했다. 정율성의 본명은 정부은으로 예명 정율성은 '음악으로 성공하라'는 뜻을 담아 의열단장 김원봉이 지었고, 이후 중국식 발음인 '정뤼청'으로 널리 알려졌다.


윤이상이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독일에서 얻은 명성은 1967년 간첩 혐의로 한국 정부에 의해 납치 및 기소된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 알려졌다. 1995년 타계 후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진실규명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중국에서 혁명음악가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던 정율성은 1988년 중국 중앙군사위원회가 정율성 작곡 '팔로군 행진곡'을 중국 인민 해방군 군가로 공식 지정하고 덩샤오핑 주석이 직접 서명했다는 소식으로 한국에 알려졌다. 정율성은 문화혁명 기간에 홍위병의 박해를 받았다가 1976년 타계 후 1988년에 명예를 회복했다.


윤이상은 5.18 광주민중항쟁 소식을 독일에서 전해 듣고 '광주여 영원히'(Exemplum in memoriam Kwangju)를 작곡했으며 1981년 5월 8일 쾰른 방송교향악단이 초연했다. 2018년에는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던 윤이상의 유해가 통영국제음악제와 때를 맞추어 통영으로 이장되었고, 개막공연에서 스티븐 슬론이 지휘하는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과 광주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번 교류 음악회에서는 윤이상과 정율성, 그리고 광주문화재단 위촉으로 성용원 • 김선철 등이 정율성 작품을 개작한 실내악곡들을 TIMF앙상블과 광주시향 단원들이 연주한다. 이번 공연은 전석 무료이며 전화 사전 예약 후 관람할 수 있다.


통영방송 기자(chshs1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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